[프리즘] ‘스트레인지 월드’의 흥행 참패
디즈니는 지난달 대작 애니메이션 ‘스트레인지 월드’의 흥행 참패를 경험했다. 영화 전문 사이트 IMDB가 추정한 제작비는 1억2000만 달러인데 현재까지 북미 흥행 총수입은 1900만 달러를 조금 넘는다.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전망한 손실액이 최소 1억 달러. 추수감사절 연휴를 겨냥한 흥행대작이면서 코로나19 이후 영화 흥행을 회복하려던 것을 고려하면 망했다고 할 만하다. 영화 산업에서 흥행 참패는 언제나 있는 일이다. 1980년작 서부영화 ‘천국의 문(Heaven’s Gate)’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흥행에 참패해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문 닫게 했다. 영화 한 편으로 오랜 역사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MGM에 팔렸고 할리우드는 한동안 서부극 제작을 꺼렸다. ‘스트레인지 월드’ 한 편의 실패를 디즈니의 상황과 영화 산업의 변화를 대변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지난 6월 ‘라이트이어’의 흥행 저조 등 최근 디즈니의 상황은 영화 산업의 밑바탕이 바뀌는 격변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 콘텐트 제국으로 불리는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에서 잇따라 실패하는 것은 기존의 영화사에는 두려운 소식이다. 더구나 디즈니는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 등을 인수해 시장점유율을 5배 늘린 공룡이다. 덩치만큼 기존의 할리우드 시스템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 적어도 코로나19가 터지기 이전까지는 시장 장악력을 높여 떠오르는 온라인 배급사에 대항한다는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영화 제작은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온라인 DVD 대여회사였던 넷플릭스가 디지털 배급을 거쳐 제작사로 자리 잡고 제작과 배급·상영에 이르는 영화 산업의 전 분야를 아우르며 할리우드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디지털 배급사가 할리우드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기존 권력에 도전할 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할리우드는 수세에 몰렸고 디지털 배급사는 기세등등했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산업 시스템 변화의 기수였다. 기술 혁신은 권력을 바꾸고 권력 변화는 기술 혁신으로 빨라진다. 넷플릭스 주가의 급락은 너무 빠른 속도에 대한 조정일 뿐, 영화산업의 권력 이동이 멈추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애플도, 아마존도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이미 ‘파친코’라는 세계적 히트작을 내놓았고 아마존은 할리우드 제작사 MGM을 인수했다. 디즈니는 막강한 콘텐트 제작 능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세력에 반격을 가하고 있지만 그리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스트레인지 월드’의 흥행 참패는 할리우드 시스템, 그중에서도 블록버스터의 작동 방식 종식이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97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조스’ 이래 할리우드는 거대한 자본의 흥행작 제작과 대대적인 홍보, 대규모 동시 개봉의 공식을 만들었고 세계 영화산업을 지배했다. 디지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 그 공식이 깨지고 시작했고 이 공식에 의존한 콘텐트는 어려움을 겪을 리스크가 높아졌다. ‘스트레인지 월드’는 적어도 방증 정도는 된다. 내년에 디즈니는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디즈니의 새로운 100년을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기술은 오래된 할리우드의 영화제작 노하우를 탐하고 오래된 할리우드는 새로운 기술을 탐하는, 경계가 무너진 시대일 것이다. 밥 아이거의 복귀를 둘러싼 희망과 우려는 이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디지털 영화사의 성공 영웅이 ‘오징어 게임’과 ‘파친코’라는 점이다. 두 작품은 코로나19 시기에 세계적 담론을 이끌었다. 기술 혁신이 할리우드 시스템이 만든 미국과 백인의 가치 중심도 바꾸었다. 주변이 중심이 될 수 있고 중심이 주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이른 것일까.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스트레인지 월드 스트레인지 월드 디지털 배급사 영화산업 시스템